2013년 9월 2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x 참회를 위한 광기, 카니발

하나님의교회는 그 중심을 하나님께로 둡니다.
사람의 유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참회를 위한 광기, 카니발

‘광기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


카니발을 받아들인 로마 가톨릭은 환락에 취해 비틀거리는 교인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 이 지극히 이교도적인 관행을 구태여 기독교화시키면서 말이다.





흔히들 카니발이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계승된 줄 안다. 부활절이 오기 40일 전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수육을 금하는 사순절을 위해, 미리 고기를 먹고 즐기는 관습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내용이라면 당연히 카니발은 초대교회 때 시작됐어야 하지만 그 기원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시대의 계절축제를 기초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와 로마의 농신제 사투르날리아의 혼합물로, 카니발은 만들어졌다.


원시인들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 봄의 도래를 축하하며 축제를 즐겼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축제의 개념이 아닌,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마술적인 의식과도 같았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마술적인 힘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가면으로 변장을 하고 자신의 일상에서 일탈한 행위를 함으로써 어떤 초월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의식은 일상의 질서와 위계를 뒤집는 행위이므로 변장은 축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이처럼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욕구를 표현하는 것, 카니발의 본질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의 축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했던 술의 신이자 농신인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그것이다. 인간에게 포도재배와 와인제조 기술을 알려줬다고 전해지는 디오니소스의 신화를, 사람들은 그의 죽음과 부활이 성장과 늙음, 죽음 그리고 재생하는 생의 주기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사흘 이상의 축제기간 동안 술에 취해 디오니소스와의 일체감을 만끽했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한 채 광란의 파티를 벌인 것이다. 축제가 절정에 오를 때 사람들은 디오니소스의 육신이 찢기고 다시 부활한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갈기갈기 찢고 그 날고기를 먹는 의식을 가졌다. 이처럼 디오니소스의 숭배도 원시신앙과 마찬가지로 봄과 결실을 위한 주술적인 목적으로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며 풍요와 쾌락, 환락과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를 넘어 로마에까지 이어졌다. 로마에서 그는 술의 신 바쿠스로 불렸다. 바쿠스 축제는 주로 여성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졌다. 으슥한 장소에서 술에 취해 미친 듯 춤을 추고 산짐승을 찢어 먹는 것은 물론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과 난잡한 성행위도 이뤄졌다. 기원전 186년 이러한 실상이 로마 당국에 알려지면서 금지조치 됐으나, 이탈리아 지역에서 계속 이어져 기원후 1세기 무렵까지 성행했다. 로마시대 벽화 특히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벽화와 석관의 부조 등에서 바쿠스 축제에 대한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근세에도 티치아노, 루벤스, 니콜라 푸생 등 많은 미술가의 작품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바쿠스 축제뿐 아니라, 로마인들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신 사투르누스를 숭배하는 날인 사투르날리아에 열광했다. 원래 이 축제는 황금시대(?)를 지배한 신 사투르누스를 염원하는 동시에 음울한 겨울의 악령을 몰아내고 봄을 맞이하는 의식의 한 형식이었다. 앞서 설명한 축제들과 같은 맥락이다. 사투르날리아는 가을철 수확과 파종이 끝난 이후인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이뤄졌던 만큼 누구나 마음 놓고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가장 큰 축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로마인들에게 계절축제는 오랜 세월 그들의 몸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관행이었다. 물론 로마제국에 만연해 있는 다수의 신과 그에 따른 수많은 축제는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달랐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기독교는 로마의 수많은 신들과 축제로 인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유일신이신 하나님만을 믿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절기만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이 이교도적인 축제를 배척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카니발이 그 결과물이다.



고대부터 전해오던 원시계절축제, 디오니소스축제, 기타 모든 민속축제들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적 관행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 금지되고 비난받았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모독으로 보였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과 풍요를 비는 계절축제들은 로마인들에게 몸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관행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근절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다소 유연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농민들이 계절에 맞춰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은 사라질 수 없는 농민들의 삶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기독교화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타협과 양보가 아닌 고도의 정치적 술책을 쓰게 된다.


이는 이교도적 축제를 차용하여 기독교를 더욱 확고히 정착시킴과 동시에 성직자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리하여 축제의 주인공인 이교도적인 신들을 예수나 성인들로 대체되어 승화시키게 된다. 이교적인 축제들을 기독교적이고 신학의 의미를 부여해 기독교화 시키게 되었다. (이벤트매거진 ‘정종윤의 카니발 이야기’ 제하의 기사, 2012년 12월호)


이렇게 해서 원시시대로부터 그리스, 로마로 이어진 계절축제는 ‘로마 가톨릭의 카니발’로 재탄생됐다. 카니발, 이 이교적인 축제로 로마 가톨릭은 수많은 로마인들을 개종시킬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맞바꾼 채 말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m=bbs&bid==border&uid=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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